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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복지사다]광산구청 복지지원과 엄미현 과장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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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129회 작성일 21-05-0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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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주사회복지사"


-떳떳하고 당당한 엄미현 사회복지사를 만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광산구청 복지지원과에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엄미현 입니다. 복지공무원 중 가장 우직함의 끝판왕 동료들과 일하고 있지요. 복지행정의 근간을 이루는 첫 시작인 복지대상자 통합조사와 통합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람한 복지숲을 이루는 씨앗을 뿌리는 부서랍니다.(시민을 관리한다는 단어가 맘에 들진 않지만 조직명과 업무명이 그러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닉네임이 몇 개 있는데, 타 지역 동료들은 이상한 공무활동가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좋아졌어요. 명함부터 행정의 색을 빼서 그런지 그렇게들 부르십니다. 이상하다는 건 새롭다는 거니 그렇게 살아가려 합니다. 특히 제 직업이 사회복지사이면서 공무원이니 늘 새롭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뒷걸음하기 십상이니까요.

어여쁘고 지혜로운 딸이 있고, 정 많고 따듯한 아들도 있답니다. 지구별에 와서 만난 인연 중 최고의 선물들이죠. 가능하면 관여를 줄이고 민주적으로 동행 중 입니다. 아들이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어요. 선배인 엄마를 훌쩍 뛰어넘는 실력 있고 단단한 복지사가 되길 바랍니다. 두 청년 모두 자신의 길을 자기답게 멋지고 당당하게 걷고 있다 믿고 있어요.


 

​▣ ? 어떻게? 사회복지사가 되려하였나요?

나고 자라면서 공무원이 꿈인 시절은 없었는데, 운 좋게(?)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하하~ 저도 제 주변의 분들도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어요. 이러다 정년까지 갈 것 같아요.

청년 시절, 성당 교리교사를 할 때였어요. 갑자기 부모를 여읜 남매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어 복지에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제게 교육의 기회와 공직에 입문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회복지사, 그것도 복지직 공무원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막상 공무원 사회복지사가 되어보니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늘 가슴속에 담고 다니던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었죠. 뒤 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지만 이론의 무장은 늘 부족합니다.

그런데 행정에 몸 담을수록 공직의 매력과 강점을 찾았습니다. 정의롭고 유능한 공무원, 태도가 따뜻한 공무원, 동료들과 우애 있게 일하는 공무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확신이 들었어요. 관행에서 벗어난 원더풀한 공무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움텄으니까요. 공공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 사회사업가라 생각합니다.

 

사회복지를 하며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나의 사회복지 현장이야기를 들려 주신다면?

30여 년의 공직생활 중 가장 감동적인 날이 있었느냐? 있었다면 언제냐?고들 물어보시죠. 특히 사무관으로 승진하던 2014년 이후엔 자주 물으셨어요. 행정에선 사무관이 꽃이라고 하면서 승진 날들을 가장 감동스런 날로 말씀들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는 동일한 답변입니다.

20131016!. 광산구의 자랑, 민관연대의 꽃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이 광주시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은 날입니다. 당시 재단 설립 지원을 담당하던 팀장이었어요. 시민들과 십시일반 모금을 했고, 전국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비전과 정관 등 준비로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설립 인가 날 파티를 하려고 못 마시는 와인까지 준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파티요? 물론, 당일 너무 바빠서 못했습니다. ㅎㅎ)

 

늘 저는 이렇게 운이 좋게도 남들이 하지 않은 일, 새로운 길을 내는 일에 기회가 주어졌어요. 해서 출근길이 늘 떨리고 설레었습니다. 또 다른 복은 주변에 동료들이 모두 훌륭했어요. 공공의 옳고 바른 철학과 가치를 아는 동료들이 동행했고, 그들과 토론하고 학습 했던 시간은 소중했습니다. 일은 늘 조직이 함께 하는 거니 저는 그 조직 안에서 행복했습니다.

복지영역 지방정부의 책무를 다하는 공영시설 운영은 공공성 강화라는 기초를 닦았다 생각합니다. 또한 복지시설과 마을을 뛰어넘는 사회적경제를 담기 위한 노력들도 의미 있는 역할이었다 자부해요.

 

마을의 비정규직 우산동장 시절도 하루하루가 특별했습니다. 사회복지사 동장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건 매일 별을 보는 것과 같으니까요. 꼬꼬마 아이들의 공간에도 눈을 돌리고 싶었고, 매주 찾아오시던 97세 어르신의 말씀으로 노인이라는 단어를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의 공원을 유지하고 싶었던 제 욕심은 주민들과 늘 일치하여 아슬아슬 잔디와 숲을 유지했습니다.

주민들을 가장 존중하는 방법은 듣고 여쭙고 의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새기고 걷고 듣고 찾던 마을살이는 저를 성장하고 깨우치는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저녁 마을대동회로 만났던 주민들, 홀로 사시던 어르신과의 이별을 마을 주민들과 복지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함께 진행했던 마을장례식, 지역의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선물했던 마을사생대회와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밝혀주라는 여고생의 바람이 실현된 등하굣길 밝히기 등 주민들이 마을을 디자인 하도록 거드는 동장의 업무일지는 738일간 가득했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책을 준비 중입니다.

유난히 1인가구와 장애인,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마을이라 무조건 아프고 고단한 분들의 편에 서고 싶었지만 부족함은 늘 제 몫이었습니다.

 

또 재미난 이력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장인데요~ 강위원 초대 관장님 말씀처럼 진짜 관장님들과의 사이에 있는 징검다리 관장입니다. 온전한 관장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18개월을 복지관과 구청을 오가며 부지런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구청 담당 부서장이면서 노인복지관 관장을 겸임하는 흔치 않는 경험이라 현장과 행정의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던 시간입니다. 더불어락이 활짝 꽃이던 시절이라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많아서 책무도 컸던 기간입니다. 어르신들은 아직까지 저를 관장으로 부르시며 소식을 전해오십니다. 다만 현장의 복지활동가들과는 벽을 완전히 허물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어요.

힘든 순간들도 있었어요. 가장 힘든 때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생각지 못한 이별의 순간과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릴 때였습니다. 견디기 힘들어 반드시 몸이 아파졌어요. 탄생도 죽음도 우리의 권한과 소관은 아니나 숨이 멎는 고통입니다.




사회복지 실천을 하며 혹여나 멘토가 계시는지?

이 질문의 답은 누구를 지목하긴 매우 어려운 난제입니다. 제 공직 생활은 멘토 이상 스승들이 넘쳤습니다. 서로 배워가는 講學! 제가 소속된 행정 안에선 명확한 철학을 가진 리더들이 계셨고, 지혜롭고 성실한 동료들이 서로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복지 현장에 가면 헌신적이고 현명한 복지활동가들이 스승이었고, 마을에 가면 경험을 가득 담은 문화재 같은 어르신들과 참 주인이신 주민들이 등대처럼 자리 잡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저의 신명나는 공직생활도 없었을 테고 광산의 공동체도 이렇게 성장 성숙하지 못했다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아침이면 떠오르는 햇살과 조용히 피고 지는 꽃들, 볼을 스치는 바람도 저와는 깊은 인연이지요. 단단하게 지켜주는 존재들입니다, 물론 글을 작성하면서 몇 분 강하게 떠오르는 분들이 있지만 실명은 거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누군가를 거론하면 더 많은 분들이 아쉬운 분들이니까요. (마음 아시겠지요? 저의 스승님들~ 깊이 감사드려요^^)

 

 

사회복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먼저, 왜 이일을 하려고 하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사회복지사인 우리가 진정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지, 사람이 반가운지 돌아봤으면 해요. 사회복지사, 거룩한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따뜻한 가슴, 불인지심(不忍之心)을 가슴 한쪽에 간직했으면 합니다. 가장 곤궁하여 호소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슴을 내어주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회복지사, 그게 바로 우리가 닮아갈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사회복지사, 사람이 기본인 복지활동가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표정과 인사, 미소와 존중이 실력이라 믿습니다. 학습 없이 진보 없다 했습니다. 또한 학습 없는 성과도 없지요. 책 읽는 사회복지사, 사유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상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야 당당하고 친절합니다. 함께 공부하십시다. 독서모임을 만들고 학습모임에 적극 참여하기를 권장합니다. 기록이 기억을 이깁니다. 기록하여 출간까지 한다면 최고입니다. 책을 만들어 낸다면 복지활동가에겐 큰 성과이고, 여러분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적극 권장합니다.

 

사회사업 사람을 돕는 일입니다. 당사자를 중심으로 사람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이죠. 사회복지사 선서를 다시 기억하며 언제나 소외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섰는지, 당사자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이익 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우는 옳은 길을 바르게 가고 있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나누지 않으면 그들에게 훔친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나눔, 최고의 사회운동이죠. 나눔은 나와 이웃을 이어주는 희망의 끈이기도 하구요. 나눔은 최고의 권력입니다. 사람의 성숙과 사회의 성장의 열쇠는 나눔이니 나눔이 정의입니다. 사회복지사 후배들께서 이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두셨으면 합니다. 나누어야 오히려 커지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작고 나직한 실천, 바로 힘찬 사회개혁으로 물결칠 것입니다. 복지활동가의 열정이 마을을, 지역을 변화시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나눔(재능기부 포함) 활동에 즐겁게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스스로의 원칙과 질서를 세웠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명분으로 최악의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되니까요.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서비스 연계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을 이웃에게 지원하는 게 맞는지? 큰소리를 치고,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민원인에게 원칙 없이 비겁한 서비스만이 최고인지? 가끔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지요. 서비스 연계에 그친다면 그건 자원봉사입니다. 우린 사회복지사입니다.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적 제도를 변화하고 구조를 바꿔 내야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좌절 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담대하게 원칙대로 실천 하십시오. 열정적으로. 그게 건강한 대안입니다.

 

사회복지 현장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 포스트 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새천년 이후 두 번의 재앙과 만났습니다. 첫 번째가 2014년 세월호 사건입니다. 어른이면서 공직자라는 게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두 번째가 코로나19 재앙입니다. 특히 코로나는 전 세계적인 재난입니다.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아가고, 일하는 방법도 다시 재점검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취약계층에게 더 혹독한 전염병은 공무원, 사회복지사들의 남다른 헌신이 요구됩니다. 신뢰는 헌신의 결실이니까요

 

 급여책정을 위한 조사 담당자조차 만남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동체를 깊게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비대면 방법으로 시민들의 알권리를 어떻게 보장해드릴지 함께 논의하니 방법들이 도출 되었구요. 조사와 관리만 하던 주무관들이 시민들을 위한 동영상을 만들고 책상에서 일하던 주무관들이 소독통을 메고 마을을 소독하며 시민들의 안전을 돌봤습니다

 다른 현장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운동화 차림으로 출퇴근한지 일 년도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비대면으로 공백이 숭숭 발생한 돌봄 영역엔 공동체 복원이 대처 방안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이젠 백신접종을 마치고 안전하고 자유로웠던 일상으로 빨리 회복하길 기도합니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향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부탁드려요.

 퇴직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면 제게 주어진 두 번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요. 남은 시간 동료들의 손을 잡고 흔들림 없는 공직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몇 년 공직에 있었다가 아니라 어떤 공익적인 일을 어떻게 했는지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요.

 

 또한 제 그릇에 담아 둔 생각들이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춰가도록 더 가다듬고 싶습니다. 혹여 이문이 남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에 온 마음이 닿기를 희망하며, 제게 주어진 책무와 권한은 늘 공익에 사용하려합니다, 후배들에게도 다정하고 따뜻한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선하고 강하게요~~!!

 

 퇴직 후엔 어떤 모습으로 사회복지사 동료들과 함께할지 상상에 맡기며 기대하세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나 회원들에게 전하고픈 메세지가 있다면?

 이런 인터뷰 기회가 있어 저를 잠깐이지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넘치는 건 나이와 경험 뿐 입니다. 경력이 많다고 다 알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오십대가 되어 알았습니다. 오히려 흡수력이 떨어지는 걸 경계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길었네요. 후회됩니다. 그래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보내는 건 라떼는 말이야~’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혹여 어떤 문장 하나라도 그 어떤 한 분에게라도 읽혀지고 위로와 용기가 된다면 좋겠다는 선배의 작은 소망입니다.

 

 기다림 또한 공손한 설득이라 합니다. 삶이 성숙해지기 위해선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하루하루가 참 좋은 날입니다. 되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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