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복지사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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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문흥2동(문산마을) 장애친화마을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윤호석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저의 삶을 정리해 보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합니다.
▣왜?어떻게?사회복지사가 되려하였나요?
농촌 시골마을 윤가 집성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온 마을이 친척이며 촌수로 엮여 형님동생, 아제, 아짐하며 어울려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이웃과 함께 나눔을 실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집집마다 넉넉지 않았던 시골 살림에 상대적인 빈곤이나 박탈감은 없었지만, 대학생활은 어려워 공군부사관으로 입대하였습니다. 이후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2000년에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자영업, 영업사원 등 다양한 경험을 거쳐 우연한 기회에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 입사하였습니다. 그 동안 받던 급여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월급여로 받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를 하며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나의 사회복지 현장이야기를 들려 주신다면?
2002년에 입사하여 장애인복지와 노동조합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복지에 대해 바로 알고자 사회복지학을 뒤늦게 배웠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인간존엄, 사회 정의,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불의와 부정을 거부한다는 선서문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 현장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곳이 전국으로도 드물었지만, 2020년 현재에도 사회복지기관 노동조합은 흔치 않아 보입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복지현장을 직면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활동에 최선을 하였습니다. 부끄럽지만 마지막 386세대로서 정치적 민주화 투쟁과 그보다 더 길고 지난했던 노동운동의 역사들에 함께하지 못한 채무의식에 보대꼈기 때문입니다.
그 간 기능(운전)직 업무부터 재가복지, 직업재활, 지역연계사업까지 거치면서 가장 힘들면서 가장 재미있는 업무는 장애친화마을사업입니다. 재가복지 영역에 근무하는 동안 사업을 계획하고 후원처를 연계하고 외부 프로포절 사업을 진행하며 장애인을 수혜자로 묶어 놓고 무조건 많은 것을 주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자기주도성이나 자립은 먼 이야기... 복지관에서 주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받는 것에 당사자는 늘 만족해 하실 거라 믿었습니다. 장애당사자를 만나면 무엇을 드릴까? 무엇을 도울까? 어떻게 즐겁게 할까? 그분이 웃으면 나도 좋았습니다. 반찬을 가져다 드리는데 맵네, 짜네, 싱겁네 불평을 들을 때는 어떻게 하지?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다 맞출 수 있겠어’ 라고 합리화 하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느 순간...
2019년 1월부터 문흥2동에서 장애친화마을사업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진행하기 위해 마을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장애당사자만 만났었는데 이제는 마을주민과의 활동들이 더해져서 큰 사업이 되었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의 정체성이 마을사업과 맞아라는 질문들을 자주들었습니다. 최대한 마을주민과 일하면 장애인복지관 직원으로서는 정체성을 헤치지않게 주민들을 만나면서 생각치 못했던 아이디어를 종종 떠올리게 됩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하는 국민디자인단 사업으로 동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하였습니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우울자살예방을 위한 장애인가족 돌봄프로젝트』를 주민들(장애당사자, 보호자, 주민, 행정과 복지관)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복지사와 대상자로 만날 때 듣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이것을 아이템으로 다듬어 「다함께 산다」 프로젝트,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마을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우수과제로 선정! 공유대회에서 3등을 하여 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장애인은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요?”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주민을 만나면 어떻게 하세요?” 다시 여쭙니다. 대부분 “안녕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보지 말고 주민으로 봐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안녕하세요.”하거나 상황에 따라 “무엇을/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어본다면 장애인도 마을에서 편안하게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드립니다.
언젠가 구청과 함께 빵만들기 체험을 하였습니다. 참여명단을 본 주무관이 “이렇게 많은 장애인이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겠어요? 장애인 참여자를 줄이고 봉사자 비율을 높이면 좋겠어요.”라고 미리 걱정하십니다. 저는 문제될 것 없으니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해 놓았는데... 체험당일 문제가 생겼습니다. 참석자들을 둘러본 제빵 강사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비장애인도 가르치기 힘든데, 장애인을 이렇게 많이 모시고 와서 체험이 되겠어요?”하고 짜증 섞인 말씀을 하십니다. 숨을 가다듬고 “우리 잘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진행해 주세요.” 하며 프로그램을 시작! 반죽과 소를 나누고 빵틀에 순서대로 넣고, 오븐에 넣을 때 제빵사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했어요. 비장애인들이 워낙 말을 듣지 않아 힘들었는데 장애인들이 더 성실히 잘 따라서 만드시네요.” 마무리 작업이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 몇 번을 미안하다며 인사하셨습니다. 덩달아 구청 담당자도 연신 미안하다는 말씀을 덧붙여 하시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날이었습니다.
김치나눔(김장담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맵네, 짜네, 싱겁네, 젓갈이 많이 들어갔네 등 갖가지 불평이 섞여 나오고, 주느니 안주느니 왜 적게 주느냐 말 많은 풍경들이 흔합니다. 하지만 문산마을은 당사자가 주민으로 직접 나와 김장축제를 즐깁니다. 돼지고기도 삶고, 김치를 직접 버무릴 수 있도록 주체로 세워드리니 자신이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어울리는 즐거움으로 가져갈 때도 당당하시고 만족도도 엄지척입니다.
누군가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마을사업, 주민을 만나고 함께하는 것이 맞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장애인이 장애인시설에서 지내고, 장애인 친구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주민으로 살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관계를 잇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욕구나 권리를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자립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복지 실천을 하며 혹여나 멘토가 계시는지?
성경에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제자 되기를 목표로 합니다. 그 다음으로 사회복지사 선서와 윤리강령을 본보기로 삼습니다. 선서문을 따르자면 우리는 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인권존중과 사회정의를 바탕으로 실천의 현장에서 연대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실천을 위해 「복지공감」 모임에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인권지기 활짝」의 학습과 토론에 참여하여 다양성과 감수성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노동조합활동은 제 인생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민주화운동, 노동자 대투쟁, 통일운동, 장애운동 등은 바른 삶에 대한 신념을 키워주었습니다. 노동권만을 알았다면 잘못된 판단과 신념으로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민주화운동, 장애인권운동, 농민운동, 세월호, 위안부피해자, 촛불혁명, 환경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의 활동이 저를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현재의 마을활동에 관심없었던 나에게 장애친화마을사업에서 보람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복지관 김미란 관장님과 김호곤 국장님의 신뢰와 응원이 매우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사회복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텔레비전에서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는데, 나이들어 보니 세상살이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사회구성원들이, 우리가 보이고, 공동체가 눈에 띕니다. 우리가 지속가능하게 잘 살기 위해 시급한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2020.09.08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지역은 낮기온 38.3도의 폭염이었습니다. 헌데 자고 일어나니, 폭설이 내렸습니다. 믿지 못할 날씨가 바로 기후위기의 경고신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들의 삶을 위해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고!
▣사회복지 현장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 포스트 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적용하고, 익숙치 않은 모습이 뉴노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들, 소통, 생활습관까지 바뀌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가족, 친구, 이웃을) 만나는 것, 거리를 산책하는 것, 여행하는 것, 사람들을 만나 일하는 것,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예전의 한가한 시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헌데 우리들 복지현장은 어떠합니까? 일방적인 통제에 따른 사실상의 분리 방역정책!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건강한 의심 없이, 방역정책에 순응하여 받아들이는 현장의 분위기가 실로 무서울 따름입니다. 당사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지원해야 할 사회복지기관이 문을 닫아걸고 수개월을 보냈습니다. 당사자의 전인적인 삶을 지원한다는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처음 경험한 코로나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매여 있던 시간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과연 휴관만이 정답이었을까? 코로나 시대에 ‘비관적인 사람은 한 게 없고, 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생각과 행동의 자율성에 기반한 전문성으로 현장의 당사자들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향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려요.
사회복지 실천은 정답은 없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도 아니요, 정답도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영역에만 매몰되면 눈앞에 있는 것만 보입니다. 한 가지에 매몰되지 않도록 늘 깨어있기 위해 다양한 영역을 보고 연대해 나가야 합니다.
장애인복지관이 왜, 마을로 나가고 장애인이 아닌 마을주민들과 함께 해요? 라는 질문에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사람들과 교류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나 회원들에게 전하고픈 메세지가 있다면?
사회복지사의 권익은 권리 위에 잠자고 있는 사람의 권리까지 보장해 주지는 못합니다.
사회복지사협회가 무엇을 해주느냐?고 묻기전에 내가 먼저 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주십시오.
부당함 앞에 눈감지 말고 당당히 말하고 연대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십시오.
나의 권리, 우리가 품고 있는 당사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변화는 나부터 시작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분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광주사회복지사다”Interview는
사회복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살아온 인생과 삶,사회복지 및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정보와 활동들을 되짚고 그것을 널리 알려 배움과 학습,정보 공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연재하는 회원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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